이름: 권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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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통 의상 치파오  

치파오 chinese dress, 旗袍(기포) (출처 : 두산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226749&cid=40942&categoryId=32086)

중국의 전통 의상.  

청대(淸代)에 형성된 중국의 전통의상이다. 원래 남녀 의상 모두를 이르는 말이지만, 보통 원피스 형태의 여성 의복을 지칭한다. 몸에 딱 맞는 형태의 옷이며, 치마에 옆트임을 주어 실용성과 여성미를 강조하였다. 옷깃은 흔히 차이니즈칼라라고 불리는 스탠드칼라이며, 치마와 소매의 길이도 다양하다. 면으로 만든 실용적인 것에서부터 비단에 여러 가지 자수를 놓아 화려하게 만든 것까지 다양하다. 또한 어떤 체형에나 잘 어울린다.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滿洲族)의 기인(旗人)들이 입던 긴 옷에서 유래하였으며, 한족(漢族)이 이를 치파오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청나라 순치제(順治帝) 원년에 수도를 베이징[北京]으로 옮기면서 치파오가 중원에 보급된 후 청나라 후기에 이르러 한족이 만주족의 옷차림을 모방하며 인기를 얻었다.

신해혁명을 거치며 서양식 의상의 영향을 받아 이전의 화려하고 복잡한 형태에서 간결한 디자인과 우아한 색깔로 변하였다.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 초에는 서양의 미니스커트의 영향으로 치파오의 치마와 소매 길이가 무릎과 팔꿈치까지 짧아졌다. 1930년대 중반에는 다시 치마가 땅에 닿을 정도로 길어졌다. 반면 옆트임은 허벅지까지 올라갈 정도로 과감해졌고, 허리선 역시 더욱 강조되었다.

1940년대 들어와 실용성이 강조되면서 치파오의 길이가 다시 짧아져 종아리까지 올라갔다. 또 장식을 배제한 단순한 형태가 주를 이루었다. 1966년부터 10년 동안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다른 전통 문화와 마찬가지로 치파오 역시 쇠퇴기를 맞았다. 그러나 세계적으로는 그 독창성과 아름다움을 인정받아 국제패션대회에서 수상을 하는 등 홍콩·타이완·화교 등을 중심으로 계속 발전하였다. 현재는 다양한 옷감과 디자인으로 중국의 예복으로 자리잡았다.

※ 중국 전통의상 치파오, 일본의 기모노, 베트남의 아오자이, 한국의 한복

중국의 전통의상 치파오에 얽힌 이야기 (출처 : 중국위해예성공원 http://blog.naver.com/yichengpark)

한국은 한복. 일본은 기모노가 있듯이 중국은 치파오라는 전통의상이 있다. 선이 자연스럽게 흘러 내리는 듯 하고, 모양이 우아한 치파오는 중국 여인들이 특히 즐겨입는 복장이다. 이 치파오는 16C 중엽, 만족의 민족의상이었다.이런 치파오를 누가 설계했으며, 어떻게 보급되었는지에 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심의와 피오

실제 치파오의 기원은 멀리 춘추전국시기의 심의(深衣)로 거슬러올라간다. 심의는 춘추전국시대부터 한대(漢代)까지 사람들에게 널리 사랑을 받던 옷이다. 후세의 파오(袍: 중국식의 긴옷)는 아마도 이 심의와 어느 정도 연원관계가 있는 듯 하다. 사실 심의는 파오와는 다소 다르다. 심의는 투피스 형식으로 상의와 치마를 하나로 연결한 듯한 효과를 나타내고, 파오는 원피스 형식으로 상의와 치마의 구분이 전혀 없다. 후에 파오는 점진적으로 안정된 복식 스타일로 정착되어 발전하였다.파오는 한대부터 관복으로 사용되었다. 처음에는 X자형 깃에 품이 넓고, 길이가 발등까지 닿으며, 소매가 넓으면서 끝이 좁고, 팔꿈치 부분이 원호 형태였다. 파오의 스타일은 시대별로 다르게 나타났지만 품이 넓고 길이가 긴 것이 가장 전형적인 것이었으며, 대체로 지식인이나 지배계층에서 즐겨 입었다. 소수민족이나 유목민족 지구에서 유행한 파오는 일반적으로 말타기나 활쏘기 등 격렬한 활동을 하기에 편리하도록 몸에 꽉 끼는 것이었다. 이러한 파오는 대체로 옷깃을 왼쪽으로 여미고 소매가 좁으며 품이 몸에 맞았다. 역사적으로 한족들도 이렇게 몸에 꽉 끼는 스타일의 파오를 여러 차례 수용한 적이 있었다. 조(趙)의 무령왕(武靈王)이 추진한 호복(胡服: 북방 유목민족 복장) 차림의 말타기와 활쏘기가 비교적 전형적인 사례이다.


최초의 치파오
  최초의 치파오 길이는 발목을 넘지 않았다고 한다. 만족 처녀들은 시집갈 때만 발목을 넘기는 결혼 예복인 치파오를 입었다. 일반적으로, 만족 귀족 여인들이나 궁중 여인들은 3㎝ 높이의 나팔형 하이힐을 신었는데, 신발을 덮기 위해 발목을 넘기는 치파오를 입었다. 1930년대 중엽에 이르러 치파오의 길이가 다시 길어져 땅에 닿았으며, 옆 트임이 점점 높아져 허벅지에 이르렀고, 허리선은 잘록하게 만들어 여인의 곡선미를 살렸다. 1940년대 와서는 치파오의 길이가 다시 짧아졌을 뿐만 아니라 옷소매가 완전히 없어졌다. 이렇게 치파오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여러 모양과 색상이 다양하고 우아한 아름다움을 뽐내게 되었다. 또 체형에 따라 그 아름다움도 달라, 마른 체형, 뚱뚱한 체형, 키 큰 체형, 키 작은체형 모두가 입어도 아름답다.
 

창파오(長袍)
청대 후기에 만주족 여인들이 입었던 창파오(長袍)는 품이 넓고, 선이 곧고 강하며, 길이가 복사뼈까지 내려왔다. "위앤 바오링(元寶領)"은 아주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는데, 옷깃의 높이가 볼을 덮어 귓볼까지 이르렀으며 파오의 표면에는 형형색색의 무늬를 수놓았고, 옷깃, 소매, 옷섶, 옷자락에는 모두 여러겹의 넓은 단이 있다. 함풍(咸豊: 1851~1861) 동치(同治: 1862~1874) 연간에는 이러한 단을 넣는 것이 크게 유행하여 원래의 옷감과 거의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였으며, 만주족 여인들의 파오에 치장한 다양한 장식은 최고 수준에 도달하였다고한다.

순치 원년에 청나라가 수도를 북경으로 옮기면서 치파오는 중원 일대에 보급되었고, 나중에 만족과 한족들의 생활이 융합되면서 치파오도 한족 부녀들에게 점차 받아들여지고 발전하게 되었다. 특히 중국이 신해혁명을 거치면서 치파오는 전국으로 펴졌고, 1920년대 말부터 30년대 초까지 서방의 미니스커트가 유행하면서 치파오의 길이도 따라서 짧아져 무릎을 약간 넘겼고,  옷소매도 짧아졌다.








치파오의 발전

1911년 신해혁명(辛亥革命)의 성공으로 중국의 마지막 봉건왕조가 붕괴되면서, 서양식 의상이 중국에 자유롭게 보급될 수 있었으며, 아울러 전통적인 예교와 교화 관념이 희석되고 복제(服制)의 엄격한 등급도 사라졌다. 이로써 의상에 있어서 평민화 국제화 현상이 출현하게 된 것은 자연적인 추세였으며, 치파오도 오랜 전통의 속박의 벗어날 수 있었다고한다.

그러나 만주족 정권의 패망으로 당시에 치파오를 입는 사람들은 아주 적었다. 서양식과 중국식이 혼용되면서 옛날 만주족 여인들의 전통적인 창파오는 사라지고 새로운 스타일의 치파오가 출현하기 시작하였다.

패션 스타일은 청왕조 때의 화려하고 복잡한 양식에서 간결함을 지향하면서, 색상도 우아함을 추구하고 여성의 자연미 표현을 중시하였다.  이러한 신식 치파오를 유행시킨 이들은 상해 지역의 여학생들이었다고 한다. 당시 여학생들은 지식여성의 대표로써 사회의 이상형이었다. 그녀들은 문명의 상징이자 유행의 선도자였기 때문에 사회 유명인사나 화류계 여인 등은 모두여학생 차림을 하고 다녔다고한다. 1930~40년대는 치파오 전성기로 그것의 기본적인 윤곽은이미 성숙되었다. 치파오는 청대 만주족 여인들의 창파오에서 탄생되어 나왔지만, 옛날 스타일을 훨씬 벗어나서 중국과 서양의 복식 특징을 융합한 근대 중국 여인의 표준 의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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